레몬시장에 ‘레몬’이 없다니?!… 과일에 비유한 경제 현상은?
장진희 (cjh0629@donga.com) 기자
2022-03-21 12:56:00
우리나라의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혀 화제다. 중고차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사용된 자동차가 신차보다 싼 가격에 매매(물건을 팔고 사는 일)된다. 현대자동차는 정밀한 검사와 수리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중고차를 구매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는 팔고자 하는 차량의 주행거리, 성능상태, 사고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구매자는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에 중고차 시장에서는 판매자가 허위매물로 구매자를 속이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왔다.
‘레몬시장’이라고 불렸던 중고차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중고차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품질을 검사해 인증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중고차 시장을 레몬시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현상을 과일에 비유한 사례를 알아보자.
서울의 한 중고차 매매 단지에 자동차가 늘어서 있다. 뉴시스
보기에만 멀쩡한 상품 파는 시장은?
샛노란 껍질을 가진 레몬은 겉보기에는 과즙이 달고 맛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너무 시고 떫어서 단독으로는 먹기 어려운 과일이다. 훌륭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능이나 품질이 뛰어나지 않은 물건을 레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레몬과 같은 상품이 빈번하게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시장이라고 부른다.
레몬시장이라는 개념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조지 애컬로프가 처음 사용했다. 애컬로프는 레몬시장이 생겨나는 원인이 정보의 비대칭에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어떤 사람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정보력이 부족해 격차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레몬시장으로는 중고차 시장이 꼽힌다. 대부분 구매자들은 복잡한 자동차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겉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자동차를 의심 없이 구매하게 된다. 일부 판매자들은 이를 악용(나쁜 일에 씀)해 외관만 깔끔하게 수리하고 내부에는 결함(부족하거나 완전하지 못해 흠이 되는 부분)이 있는 자동차를 비싼 값에 판다는 문제가 있어왔다. 현대자동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국내에서 고질적인 문제가 개선될지 관심이 쏠린다.
신용카드 혜택만 누리고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를 ‘체리피커’라고 한다
기업 입장에선 얄미운 소비자, 체리피커
달콤한 케이크 위에 화룡점정(무슨 일을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함)으로 장식된 먹음직스러운 체리. 이것만 쏙 골라 먹듯이 기업이 주는 혜택이나 서비스를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상품은 적극적으로 구매하지 않으며 실속을 챙기는 소비자를 ‘체리피커(cherry picker)’라고 부른다.
일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구독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첫 1개월 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무료 구독이 끝나기 직전까지만 이용하다가 유료로 전환되기 전에 구독을 해제하는 소비자를 체리피커라고 할 수 있다.
신용카드 회사는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한 소비자에게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 같은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체리피커는 여러 개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각 회사에서 혜택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만을 결제하는 경향이 있다.
가격은 싸면서 품질이 뛰어난 상품을 복숭아에 비유하고 이 같은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피치시장’이라고 한다
‘가성비’ 최고만 거래되는 시장도
레몬시장에 반대되는 ‘피치시장’도 있다. 피치(peach)는 복숭아라는 뜻을 가진 단어.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지 않은 상품이 거래되는 레몬시장과는 달리 피치시장에서는 훌륭한 상품이 거래된다. 겉보기에 탐스러울 뿐 아니라 맛과 향도 뛰어난 복숭아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줄임말)가 뛰어난 제품에 비유하는 것.
최근에는 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정보력이 뛰어난 소비자는 값은 더 싸고 품질은 더 뛰어난 상품을 가려낼 수 있다. 이에 기업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제품을 팔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똑똑한 소비자로 인해 뛰어난 제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피치시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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